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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 기억을 더듬어 보면, 초등학교때 청실아파트 놀이터에서 친구랑 그네탄 기억이 어렴풋이 나고, 아, 내가 대학교 2학년때 좋아했던 어떤 누나가 청실아파트 살았었어. 재개발 후에는 어디로 이사갔는지 모르고…  연락이 끊어졌지 . 아파트 재개발 전에는 청실아파트 지나갈때 그 누나 생각도 나고 그랬었는데, 청실아파트가 재건축 하고 레미안이 들어서니.. 그런 아련한 기억도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네.

 

@SOO: 저는 미도아파트에 살았고, 단대부중-단대부고를 다녔어요. 등하교길에 항상 청실아파트 단지를 통과해 다녔습니다. 어느날 등교길에 마주친 여학생을 짝사랑하게 됐는데, 그 여학생이 나보다 한살 위고, 경기여고에 다니며, 청실아파트 19동에 산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하루는 아침 일찍 나가서 19동 놀이터에서 기다렸습니다. 그 누나가 몇 호에 사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복도형 아파트라서 현관문 열리는 것을 놀이터에서 다 볼 수 있었거든요. 이집 저집의 현관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1층 맨 왼쪽 집의 한쪽 방 창문 불이 꺼지더니 현관문이 열렸어요. 그리고 그 누나가 나왔죠. 101호. 놀이터에서 가장 가까운 곳. 놀이터의 바이킹 같은 철제 그네 바로 앞에 그 누나의 방 창문이 있었어요.

그 이후, 내가 고 3때 그 누나가 이사갈 때까지, 그곳 청실아파트 19동 놀이터는 저에겐 성지와 같은 곳이 되었어요. 학교를 안 가는 날은 있어도 놀이터에 들르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가서는 그 누나의 방 창문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철제 그네에 그저 멍하니 앉아있기도 하고…

봄에는 벚꽃과 목련이 참 예쁘게 피었어요. 원래 청실아파트 단지 전체가 다 그렇긴 한데, 전 19동 놀이터의 벚꽃과 목련이 제일 좋았어요.

 

@DK:청실아파트가 재건축으로 헐렸다는 얘기를 듣고 뒤늦게 찾아와봤다. 내 사춘기 여리디여린 풋내나는 짝사랑의 기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던 곳. 봄이면 벚꽃과 목련이 예쁘게 피고지던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

 

@JINYOUNGCHOI:청실의 가장 큰 기억은 사잇길에있는 벚꽃나무들, 봄에 벚꽃 만개했을 때 지나갈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듯

@YISONG:어린이일 때 청실 단지 내에 있는 어린이집 다니며 매일 래미안, 청실 사는 친구들이랑 서로 집 오가며 놀았었는데 ….이제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니 낯설어요. 개미가 참 많은 집이었는데..

 

@SYCHOI: 그때 2010년 이었고, 엄청 비가 많이 왔는데 대치동이 완전 물에 잠겼었어요. 대곡초등학교는 아예 학교 1층이 사라졌어요. 그때 다른 지역에 비해 청실아파트가 지대가 높아서 완전 섬처럼 동동 떠다녔어요. 편의점에서 거의 헤엄쳐서 집에 간 기억이 나요. 그래서 은마아파트에 사시던 분이 집이 물에 잠겨 저희집에서 일주일 동안 지내셨어요.

 

@HANOH:초등학교 3학년때, 같은 축구팀에서 운동하던 친구를 하늘 나라로 떠나보냈습니다. 당시 뉴스에도 여러번 나왔던 사건이었습니다. 청실 아파트 놀이터에 있는 팔각정 같은 곳 위에 올라간 공을 꺼내려 한 친구가 지붕위로 올라갔고, 갑자기 팔각정 기둥이 흔들려 제 친구가 아래에서 흔들리는 기둥을 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팔각정이 무너지면서, 둘 다 하늘나라로 떠나갔습니다. 이 소식을 어머니들 연락을 통해 전해 들었을때 장난인 줄 알았습니다. 오늘 하교전까지 같이 장난치고, 공차고 놀았던 제 친구가 떠났다는 소식 믿기 힘들었습니다. 한없이 착했고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솔선수범하던 성격때문에, 혹시 친구가 위험하지 않을까 기둥을 잡고 있던 친구, 기둥이 무너지면서 친구쪽으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한동안 감히 웃는것 조차 친구에게 미안했습니다. 웃을 수 없었습니다. 그 친구가 죽었던 청실 아파트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새로 생긴 레미안 펠리스에 지금 제가 살고 있습니다. 갑자기 슬퍼지는 출근길 입니다.

 

@HARA:저는 2004년 12월 30일에 다른지역에 살다가 처음 대치동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 전 지역에서는 잘사는 집에 속했는데 사실 처음 이사왔었을때는 청실이라는 이름도 그렇고 주변에 좋은 아파트들이 많아서 기죽기도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1동에 살았었는데 1동앞 주차장에서 친구들이랑 줄넘기도 했었고 놀이터에서는 남자애들이랑 서바이벌게임(가짜 총 쏘는 게임)도 하였습니다. 제가 5층에 살아서 놀이터에서 제 이름부르면 다 들려서 방에서 공부하다가 뛰어나간적도 많았어요. 2동앞에는 주민센터있었는데 거기 지하에 독서실이 있어서 시험기간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자리잡았던 것도 기억에 남니다.

청실이 단지가 많아보니 여기 살던 친구들이 많아서 최선 학원끝나면 지하에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사서 다같이 1동이랑 10동 사이에 골목 지나서 삼성아파트 놀이터 갔던 기억도 있습니다.

 

처음 전학 온 학교에서 잔뜩 주눅 들어서 지냈던 기억, 중학생이 되어서 처음 교복을 입었을때 기억, 선생님께 칭찬 받았던 기억, 학원에서 고생하며 영어단어를 외웠던 기억, 2002년 6월 모두가 빨간 셔츠를 입고 있었던 기억, 그런 기억들도 청실아파트에 다 담아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없어졌네요.​

 

@CHAE:청실아파트 재건축., 집주인에게는 좋겠지만, 나에게는 과거의 추억거리가 송두리째 없어지는 일이 되어버렸다. 청실아파트에서 보낸 중고등학교시절의 여러가지 기억들이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이제는 추억의 장소에 가 봐도 황량한 바람만 있을 것 같다.

 

@KANG:과거 주공아파트였던 대치동 동부센트레빌 아파트상가에는 나의 꼬마 때 단골이던 코끼리분식이 있었다...떡볶이를 많이 주셨었는데...예전에 살던 청실아파트 상가의 재건축 검토건이 들어왔다...시간은 많이 흘렀고 추억의 장소들은 개발의 기치 아래 하나씩 사라져간다...내 추억을 스스로 지워가는 일에 관여된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그럼에도 슬프다에 한표 더 주련다. 

@SANGEUNKIM: 제가 청실아파트에서 거주한 것은 2002년 3월에서 2004년 6월 가량의 일입니다. 처음 청실아파트에 입주했을 때 저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당시 대치동으로 이주하게 된 건 전적으로 부모님들의 합의였습니다. 제가 10대 초반이고 제 형제가 10대 중반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부모님들은 원래 살던 지역(강북 쪽이었습니다)에서는 저희의 학습효율을 끌어올리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셨고, 그래서 고민 끝에 그 당시에도 교육의 중심지였던 대치동으로 이사하셨습니다.

 

청실아파트에서 살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것만으로도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거의 기능,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을 구입하는 기능, 그리고 만화책이나 옷, 화장품 같은 사치품을 구경하고 구입하는 기능을 아파트 단지 내에서 전부 다 수행할 수 있었거든요

 

다만 청실아파트에서 살면서, 좋지 않았던 기억은 엄청나게 바빴다는 것이네요. 사실 대치동으로 이주한 계기가 저희 남매의 교육을 위한 것이니만큼, 이전과는 상당히 높은 강도로 공부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저는 학원이나 과외 같은 사교육을 비교적 늦게 접한 케이스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만큼만 공부하고, 기껏해야 구몬을 푸는 정도였거든요. 그 때문인지 영어 수준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습니다. 알파벳이나 영어로 하는 간단한 인사 정도만 알았고, <숙어>라던가 <접속사>같은 품사의 명칭은 아예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을 정도였죠. 지금은 공교육에서 영어 교육을 얼마나 일찍, 그리고 높은 난이도로 시키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의 경우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품사를 알지도 못했고, 알 필요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대치동에 온 이후로 본격적으로 영어학원이나 수학학원을 다녔습니다. 지금 다 큰 제가 생각해 보면 우스운 추억이었지만, 당시의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울고 싶었던 심정은 아직까지 생생하네요. 대치동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저는 모자란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 하나학원이라는 곳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원이 그런 것처럼, 하나학원이라는 곳 또한 매일 영어 필기시험을 치르고, 구두 시험으로 암기한 단어를 테스트하고, 틀리면 맞을 때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학원이었습니다. 영어학원에서 저를 담당한 선생님은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분이었습니다(지금 생각해보면, 실제로 불친절한 게 아니라 학원강사가 워낙 힘든 직업이다 보니 너무 피곤해서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은 숙어책과 단어책을 주시면서 나중에 테스트를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공부의 어려움이 기껏해야 구몬 수준이었던 저에게 영어 단어책은 마법책처럼 난해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테스트의 결과는 꽤 끔찍했습니다. 선생님이 <both A and B>라고 읽으면 저는 그걸 <boss A and B>로 알아들었고, 또 그걸 그대로 테스트 종이에 써서 제출했거든요. 당연히 저는 남아서 공부하는 것이 확정됐습니다. 지금까지 오후 2시 50분에 하교해서 7시간을 놀아왔던 저는 오후 6시가 되어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저녁밥도 먹지 못하고, 선생님이 다음 타임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저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에 거의 울 지경이 되었죠. "바깥은 이미 한참 전에 어두워졌고, 길도 잘 모르고 무서운데 아직도 집에 못 가는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에요.

 

청실아파트 생활이 끝난 것은 2004년 6월이었습니다. 부모님의 해외 발령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저는 그 이후로 5년 정도 대치동과 관계없는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사실 2007년에 한국에 귀국하기는 했지만, 그 때 저희는 경기도에서 살았고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대학 입시 준비에 바빠서 청실아파트나 대치동을 방문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2009년도인지 2010년도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하여간 성인이 되어 찾아간 청실은 2004년도의 청실아파트와 흡사했지만 훨씬 낡은 상태였습니다. 물론 2002년에도 이미 10년은 훨씬 넘은 연식의 건물이긴 했죠. 그렇지만 당시에는 이미 재건축이 확정된 상태였고, 그 때문인지 외부 도장을 몇 년 동안이나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벽에는 금이 가 있었고, 동을 나타내는 파란 숫자도 빛이 상당히 바래어 있더라고요. 낡아 보일 만도 했습니다. 아직 주민들이 거주 중이기는 했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의 연락은 이미 끊어진 지 오래였고, 또 몇몇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간 상태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공간은 공간 자체만이 아니라 시간 또한 부여되어야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청실아파트는 여전했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많은 게 변했고, 그 때문에 어린 시절처럼 <내 집>이라는 생각을 갖기 힘들더라고요. 청실은 이전에 제가 알던 청실이 아니라는 게 많이 슬펐습니다. 나쁜 기억도 있고, 좋은 추억도 있고, 저한테 큰 성장의 계기가 된 공간이었거든요.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도 특별히 많은 정을 갖고 있었던 동네가 낡아서 곧 허물어질 거라는 사실이 안타깝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방문한 건 2012년인가 2011년이었는데, 그때 청실은 허물기 직전이라서 주민들도 전부 나간 상태였습니다. 아무도 없었어요. 주차금지 표시라던가, 벽보라던가,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는 물건들도 전부 치운 상태여서 그냥 폐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놀이터였습니다. 15동 앞에는 초록색으로 칠해놓은 그네나 시소 같은 놀이시설이 있었습니다. 2002년에도 녹슬고 낡은 상태여서 그 기구를 갖고 노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저보다 어린 아이들이 가끔씩 거기에서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끔씩이라도 사람의 손을 타는 기구들은 안 쓰는 기구들과는 차이가 나기도 했고요. 그런데 2012년의 놀이기구들은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초록색이라거나, 녹슨 상태도 똑같았는데 이젠 정말로 버려져서 두 번 다시 쓸 일이 없을 기구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30분 정도였나? 1동에서 15동까지 천천히 돌았는데, 거기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할 정도로 하나도 없더라고요. 화단에 있었던 식물들도 다 말라 죽었거나 뽑아갔거나 한 상태였습니다. 아파트 단지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면 남서울상가나 청실상가가 있고, 거기에서는 상인이나 학생들도 있는데, 고작 그 경계만으로 이렇게 분위기가 차이 날 줄은 몰랐습니다. 연구자 분께서 며칠 전에 제 트윗을 리트윗하셨죠? <지금은 청실아파트 다 사라지고 래미안인지 데시앙인지 들어섰는데 내가 거기서 살았다는 물리적 증거도 다 사라지고 남은 증거라고는 내 기억밖에 없네ㅇㅅㅇ;>라고 썼던 글인데, 그 때 느낀 심정은 정말 그 글 그대로였습니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처럼 국보나 사적이 아닌 이상, 모든 건물들도 언젠가는 수명을 다 해서 허물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어떤 건물들은 사람의 일생보다 오래 남겨져 있기도 하고, 그래서 그 사람들은 그 건물을 보면서 자기 옛날 모습이나 관련된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을 거에요. 청실아파트는 제게 있어서, 2002년과 2004년 사이 제 모습을 담고 있는 물리적인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집에서 살았던 것 말고, 처음 전학 온 학교에서 잔뜩 주눅들어서 지냈던 기억, 중학생이 되어서 처음 교복을 입었을 때 기억, 선생님한테 칭찬받았던 기억, 학원에서 고생하며 영단어를 외웠던 기억, 2002년 6월에 모두가 빨간 셔츠를 입고 있었던 기억, 그런 기억들도 다 청실아파트에다가 담아 두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젠 없네요. 지금은 2016년이고(세월 진짜 빠르더라고요. 전 아직도 2015년 같은데.) 이젠 청실아파트 자리에는 래미안 아파트들이 새로 세워졌습니다. 청실보다 훨씬 디자인도 근사하고, 층수도 높고, 편의시설도 충실하게 갖춰져 있는 아파트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20년은 너끈하게 계속 대치동에 서 있을 거에요. 아마 시간이 지나면 남서울상가나 청실상가도 허물어질 테고, 그 자리에 새로운 상가건물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추세로 미루어보건대 오피스텔도 딸린 상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옛날 10대 초반의 제 모습을 떠올릴 수단은 오로지 내 기억뿐이겠구나.> 이런 슬픈 생각이 듭니다. 

@JUNHO:초등학교 청실아파트 살때, 애들이랑 재미있게 논 기억이 많이 나네요. 그러다 재건축 한다해서 타워팰리스로 이사갔다가 현재 재건축된 청실래미안팰리스에 살고있습니다. 기분이 이상하고 묘합니다.

 

@JUH: 중학교 다닐때 학교 끝나고 청실 18동에 사는 친구네 집에서 컴퓨터 게임하면서 놀았던 것들, 아파트 현관 앞에서 1-2시간씩 친구들 이랑 수다떨던 기억들.. 얼마전에 재건축되고 한번 가봤는데 뭔가 높은 빌딩숲이 되서 멋지게 보이긴 했지만 굉장히 낯설었고 과거 추억의 장소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니까 아쉬운 마음도 있고 그러네요

 

@:물에 잠긴 은마사거리 여긴 고질적으로 옛날부터 이 모양이었다. 초등학교때도 이런 비슷한 침수사태가 있었는데! 매봉역, 도곡역근처 사는애들은 발목까지만 잠겼는데, 청실아파트-은마아파트-미도아파트로 내려갈수록 무릎에서 허리까지 잠겨왔다. 도곡역근방에 살던 철딱서니 없던 초딩시절! 친구들이랑 튜브를 갖고 은마사거리가서 수영을 했었던 기억이 너무나 선명하다.

 

@KANG:과거 주공아파트였던 대치동 동부센트레빌 아파트상가에는 나의 꼬마 때 단골이던 코끼리분식이 있었다...떡볶이를 많이 주셨었는데...예전에 살던 청실아파트 상가의 재건축 검토건이 들어왔다...시간은 많이 흘렀고 추억의 장소들은 개발의 기치 아래 하나씩 사라져간다...내 추억을 스스로 지워가는 일에 관여된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그럼에도 슬프다에 한표 더 주련다.

 

@MIN:옛날 대치동이 좋았다. 은마상가 청실상가 영동아파트 상가에 손으로 빚은 식혜도 팔고 개나리아파트에는 봄만되면 온 단지에 노오란 개나리가 활짝 피어서 화사했는데!

 

@PARK:청실상가에는 문방구가 둘 있었는데, 둘 중 뒷쪽에 붙은 문방구 아저씨는 우표를 팔았다. 카탈로그를 펼쳐놓고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설명해가며 우표를 팔았다. 200원, 300원을 들고 가서 이것저것 사오곤했는데 그 아저씨는 좀 귀찮기도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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