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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학원

  • SANGEUN
  • May 1, 2016
  • 2 min read

제가 청실아파트에서 거주한 것은 2002년 3월에서 2004년 6월 가량의 일입니다. 처음 청실아파트에 입주했을 때 저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당시 대치동으로 이주하게 된 건 전적으로 부모님들의 합의였습니다. 제가 10대 초반이고 제 형제가 10대 중반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부모님들은 원래 살던 지역(강북 쪽이었습니다)에서는 저희의 학습효율을 끌어올리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셨고, 그래서 고민 끝에 그 당시에도 교육의 중심지였던 대치동으로 이사하셨습니다.

청실아파트에서 살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것만으로도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거의 기능,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을 구입하는 기능, 그리고 만화책이나 옷, 화장품 같은 사치품을 구경하고 구입하는 기능을 아파트 단지 내에서 전부 다 수행할 수 있었거든요

다만 청실아파트에서 살면서, 좋지 않았던 기억은 엄청나게 바빴다는 것이네요. 사실 대치동으로 이주한 계기가 저희 남매의 교육을 위한 것이니만큼, 이전과는 상당히 높은 강도로 공부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저는 학원이나 과외 같은 사교육을 비교적 늦게 접한 케이스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만큼만 공부하고, 기껏해야 구몬을 푸는 정도였거든요. 그 때문인지 영어 수준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습니다. 알파벳이나 영어로 하는 간단한 인사 정도만 알았고, <숙어>라던가 <접속사>같은 품사의 명칭은 아예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을 정도였죠. 지금은 공교육에서 영어 교육을 얼마나 일찍, 그리고 높은 난이도로 시키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의 경우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품사를 알지도 못했고, 알 필요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대치동에 온 이후로 본격적으로 영어학원이나 수학학원을 다녔습니다. 지금 다 큰 제가 생각해 보면 우스운 추억이었지만, 당시의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울고 싶었던 심정은 아직까지 생생하네요. 대치동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저는 모자란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 하나학원이라는 곳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원이 그런 것처럼, 하나학원이라는 곳 또한 매일 영어 필기시험을 치르고, 구두 시험으로 암기한 단어를 테스트하고, 틀리면 맞을 때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학원이었습니다. 영어학원에서 저를 담당한 선생님은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분이었습니다(지금 생각해보면, 실제로 불친절한 게 아니라 학원강사가 워낙 힘든 직업이다 보니 너무 피곤해서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은 숙어책과 단어책을 주시면서 나중에 테스트를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공부의 어려움이 기껏해야 구몬 수준이었던 저에게 영어 단어책은 마법책처럼 난해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테스트의 결과는 꽤 끔찍했습니다. 선생님이 <both A and B>라고 읽으면 저는 그걸 <boss A and B>로 알아들었고, 또 그걸 그대로 테스트 종이에 써서 제출했거든요. 당연히 저는 남아서 공부하는 것이 확정됐습니다. 지금까지 오후 2시 50분에 하교해서 7시간을 놀아왔던 저는 오후 6시가 되어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저녁밥도 먹지 못하고, 선생님이 다음 타임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저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에 거의 울 지경이 되었죠. "바깥은 이미 한참 전에 어두워졌고, 길도 잘 모르고 무서운데 아직도 집에 못 가는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에요.

청실아파트 생활이 끝난 것은 2004년 6월이었습니다. 부모님의 해외 발령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저는 그 이후로 5년 정도 대치동과 관계없는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사실 2007년에 한국에 귀국하기는 했지만, 그 때 저희는 경기도에서 살았고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대학 입시 준비에 바빠서 청실아파트나 대치동을 방문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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