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청실아파트 1동
- MKJUN
- May 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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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실 아파트가 마침내 헐렸다. 우리 가족은 1979년 청실아파트 1동에 입주를 했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인근 주택으로 이사를 나왔으니 그리 오래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청실아파트 입주는 나의 기나긴 대치동 생활의 시작이었다. 최근 몇년간 머리가 다 망가지면서, 청실 이전의 기억이 거의 사라져버려, 청실아파트는 사실상 내 기억에 남아있는 세상의 첫 모습이다. 말죽거리에서 넘어오는 남부순환로를 제외하면 도로 포장이 돼있다 말다했던 그 시절, 난 시멘트-아스팔트만큼 흙도 많이 밟으며 살았다.
현재는 주상복합들이 들어선 도곡동은 정말 오랜 기간동안 공터였는데 고철 수집장소나 전경 훈련장이 생기기 전까진 그냥 넓은 풀숲이었다. 집 바로 앞이니 곤충 채집하러 가곤 했었는데, 놀다보면 화장실이 가기가 멀어서 간혹 땅을 비옥하게 해주었다.
외벽에 껍질만 씌웠을 뿐 아직도 그대로인 청실상가와, 겉모습마저 그대로인 남서울상가. 이 두 건물이, 은마상가까지 가지 않아도 생활 이 가능하도록 우리 동네를 지켜줬다. 청실상가 입구 중 집에서 가장 가까운 문을 들어서면 문방구가 하나 있었는데... 어머니께 100원을 받아서 조립식 장남감을 사러 가던 그 기분도 생각이 난다.
겨울이면 청실상가 옆으로 논에 물막듯 물을 막아놓고 스케이트장을 운영했는데 어머니는 같이타지않으시고대여소겸휴게실인따뜻 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지켜보곤 하셨었다. 그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각종 군것질거리도 팔았 었다.
아버지가 미국 출장에서 사오신 레고를 구경 하려고 동네 친구들이 놀러왔었던 기억도 나 고 복도 중간에 있는 수직낙하식 쓰레기통로 의 문을 열고 쓰레기를 던져 넣고서는, 12층을 자유낙하하여 떨어지는 소리를 귀기울여 듣 던 기억도 나고,(이 시설은 언젠가부터 사용 금지 돼었다)
이층침대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누나랑 장난치 던 기억도 난다.
이사할 때 아버지를 포함한 건장한 친척어른 들몇분이피아노를쉽게옮길방법을궁리하 며 고생하셨던 기억도 난다. 방금 계산해보니, 1979년의 아버지는 지금의 나보다 한살 어리셨구나.. 허허 이것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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